 엔(N)포시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2015-12-15 17:03:05
여울 김준기
첫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날, 창문 옆 빈 벽에 댕그라니 매달려 있는 12월의 카렌다 한 장이 문득 나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 (독일. 1892-1973)처럼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혼자 있게 될 때...
한 해를 보내는 세밑의 화려한 분위기가 왠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세월호에 갇혀 차디찬 바다 속에 몸을 묻고 별나라 떠도는 수백송이 꽃들의 영혼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영혼들 앞에서 짐짓 악어의 눈물 몇 방울 떨구고 매정하게 돌아선 여인의 싸늘한 표정이 지금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꽃다운 주검을 놓고 싸움판을 벌이는 오만과 편견에 눈 먼 자들의 뻔뻔한 배짱이 우리를 더더욱 슬프게 한다.
지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온 나라에 가득하다. 삼포 오포세대를 넘어 이제 엔(N)포세대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돈 많은 부모한테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자식들은 부모 재산을 물려받는다지만 더 많은 부모들은 흙수저도 물려줄 형편이 어려운 게 경제선진국 대한민국 현실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삼포세대라고 하는 것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마침내는 학업, 취업, 정규직, 승진, 주택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른바 엔(N)포세대 상황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떠도는 말로 ‘헬조선(지옥한국)’이다.
이 나라 권력은 국민들에게 더 많이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조들이 이룩한 역사를 포기하라 하고 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도 일부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권력은 단단한 지연과 옛 권력의 향수에 얽힌 콘크리트 30%대 지지를 발판으로 70% 온 국민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떡은 자기들의 마당에서 만들테니 너희들은 담 너머로 흩어지는 콩가루나 받아먹으라고 다그친다. 애당초에는 고장마다 집집마다 떡을 공평하게 만들게 하겠다고 약속 했었다. 실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신 잔재인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겹겹이 쌓고 있는 저 권력의 성벽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심리학적으로 슬픔은 이별이나 상실이 동반하는 감정이라지만 절망과 분노를 동반하기도 한다. 오늘도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모인 저 수만 시민들의 함성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메아리도 없는 저들 분노의 외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절망과 분노로 아우성치는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자는 누구이며 물대포를 맞고 목숨이 위태로운 이는 누구인가? 국민을 지키려 하지 않고 정권을 지키려는 정의롭지 못한 물대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해오는 대한민국 소식들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뉴욕 타임스와 아사히신문,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션저녈, 영국의 BBC 등 세계적인 언론 매체들이 한국의 대통령이 ‘후진’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아시아 민주화의 모범국가인 한국이 권위주의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독재정권 시대로 한국을 되돌리려 한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선진국들의 우려에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대통령의 오만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젊은이들은 삼포를 넘어 엔(N)포세대가 되어가고 국민들은 메아리 없는 절망과 분노를 외치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대통령은 부모를 비명에 잃은 후유증 트라우마에 빠져 이를 앙다물고 ‘불통의 마이웨이’를 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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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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