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가을에 보내는 노인의 일상(日常)2016-11-29 10:10:49
최정욱 법무사
봄은 설레임 가운데 오고 가을은 서글픔 속에 가는 계절입니다.
가을 걷이가 끝나버린 황량한 들판은 누어있는 계절입니다.
김광규라는 시인은 “생각보다 짧았던 여름”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간 봄은 아름다웠고 /여름은 생각보다 짧았다./ 어느새 인적없는 들판에 어둠이 내리는데/가을은 걸어서 간다해도/ 다가오는 겨울은 /어떻게 맞으리.
봄이 발랄한 청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사색하는 노인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인가. 노인이 되면,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깜박깜박 졸고 앉아있습니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은 본체 만체 하면서도 손자는 예뻐합니다. 대개의 노인네들은 스마트 폰의 바탕화면에 손자들의 사진을 저장하고 보는 것이 예사입니다.
엊그제 한 약속은 곧 잘 잊어버려도 까마득한 옛일, 특히나 서운했던 기억은 잘도 짚어냅니다.
울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오고, 웃다가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칩니다.
맞아야 안 아프고 안 맞으면 아픕니다. 아내나 손자를 불러 안마봉으로 어깨나 등을 두드리도록 하고는 시원해 합니다. 젊어서 희던 얼굴은 검어지고 검었던 머리는 희어집니다. 이용원에서 이발을 한 다음 순서로 머리염색을 하는 노인을 보는 것은 소주 한잔에 삼겹살 안주를 먹는 것처럼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목욕탕 에서는 뜨거운 온수를 틀어 놓고, 시원하다고 하다가 손자에게서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핀찬을 듣기도 합니다.
이것이 봄과 가을이 다르듯이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 다른 점입니다.
짧은 가을 해가 서산마루를 기웃거릴 무렵입니다. 노인은 어린이 놀이터 한쪽에 있는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손꼽놀이하는 어린 것들을 무심히 보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저만치 오고 있는 제 어미를 보고는, “엄-마 -” 하면서 뛰어 갑니다.
재래시장이나 마트에라도 다녀오는지 한 손에 가벼운 시장 바구니를 들고 오던 새댁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두 손을 활짝 펴면서 “어이구, 내 새끼” 하고 어린 것을 덥썩 안고 입맞춤을 합니다.
젊은 새댁과 어린 딸은 재잘거리며 웃습니다. 권태로운 고요가 감도는 가운데 정겨운 평화로움이 놀이터에 가득한 듯 합니다.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행복에 겨운 낯빛으로 웃으며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 그래, 때로는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단다.” 노인은 울컥 치미는 눈물을 삼키고 도리질을 하며 먼-산을 응시합니다. 속으로 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노인이 되면 주변이 허허로워 집니다. 자주 보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요양원에 있거나 북망산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이 인사입니다.
장례식 장에 가면 망인(亡人)의 연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문객을 마지하는 상주들의 얼굴에 슬픔보다는 큰 짐을 벗은 가벼운 안도의 미소가 번지면 미수(米壽)를 전후하여 가시는 분이라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단풍철이라고 너나 없이 산행을 떠납니다.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중더러 묻는 말이 풍악이 어떠더냐/ 요사이 서리 내려 / 때 만났다 하더라/
이조 영조 때 형조판서를 지낸 조명리가 지은 시조입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우리 민족은 풍류를 좋아하나 봅니다. 내장산 단풍이 절정이라고 신문 방송이 떠드는 바람에 노인의 마음은 심술 생술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많다보니 고을마다 철따라 노인네들도 대학을 다닙니다. 이름하여 노인대학이라 하던가?
때가 때인지라 노인대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단풍놀이를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는 소식을 간간히 접합니다.
오래지 않아 산중에 누어서 싫토록 단풍구경을 할 수도 있으련만 그 사이를 못 참고 속절 없이 미리 가 버리는 그 안타까움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나라꼴이 원망스러워서, 차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이 백만송이 촛불되여 “대통령 물러나라”는함성이 이 땅을 수놓고 있어도 마땅히 갈 곳 없는 노인은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이것이 오늘 날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 노인현실입니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