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군산시 문학인의 길」 어찌하나2018-03-05 09:48:23
여울 김준기(시인. 전 교장)
군산시가 「전라북도 2017 경관디자인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 7억4천만 원을 지원 받아 수송동 지역에 ‘군산시 문학인의 길’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수송동 새들공원과 예술의 전당 지하차도 일대에 만들어질 ‘군산시 문학인의 길’은 군산출신 문인과 문학작품을 이미지로 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꾸민다는 구상인데 대상 문인의 선정 갈등에 이어 시작하기도 전에 선정된 인물의 성추행 사실이 불거져 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군산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은 소설가 채만식과 고은 시인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군산시는 두 문인 외에 중앙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선정을 특정 문인단체에만 일임하여 갈등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진 것이다.
지난 해 중앙문단의 한 여성 시인이 발표한 성추행 고발 시 ‘괴물’의 주인공 ‘En’이 고은 시인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 사건은 문화 예술계에 성추행 고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고은 시인은 우리 군산은 물론 대한민국 시단의 원로이고 세계 문단에서 인정받는 노벨상 후보이기도 하다.
고 시인의 ‘괴물’ 성추행 사건은 관련 단체나 본인의 사과로 국민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준을 넘어 폭발성이 예측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고은 시인에게 집필실과 주택을 마련해준 수원시는 올해 고 시인과 관련된 문화 사업들을 모두 취소하였고 고 시인은 수원시가 제공해 준 ‘문화 향수의 집’을 떠나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 도서관에 예산 3억 원을 들여 고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만인의 방’을 마련하여 기획 전시실과 서재를 꾸미고 시민에게 공개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지자 ‘만인의 방’ 폐쇄와 관련사업의 취소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만간 관련 문화 단체들이 밝힐 입장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원로 시인의 도덕적 인격적 신뢰 여부를 떠나 고은 문학의 모태가 되는 우리 군산 시민으로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군산시가 구상하고 있는 ‘군산시 문학인의 길’ 조성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재검토 여론도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은 시인을 대표문인으로 선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수년전 채만식 문학관을 꾸밀 때 문단에 제기되었던 채만식의 친일작품 문제로 갈등을 빚은 상황과 대비된다.
당시 중앙문단과 고 시인이 포함된 민족문학 관련 단체에서는 이념적 정체성을 문제 삼아 채만식 문학관 건립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었다.
그러나 군산시와 시민들은 이런 논란을 넘어서 채만식 문학을 이해하고 군산문학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문학관을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지금 군산시가 구상한 ‘군산시 문학인의 길’ 조감도를 보면 선정된 문학인들의 얼굴과 작품관련 이미지들이 공원과 도로 옹벽에 벽화처럼 그려지고 게시하여 공개 전시하는 모양새다.
과연 이들을 바라보는 시민과 관광객들은 이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감정을 나타낼 것인가? 자칫 비난과 비웃음의 표적이 되어 더 큰 상처를 만들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문득 선운사 입구에 세워놓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비가 친일시인이라는 낙인으로 관광객들로부터 돌로 쪼이는 등 수없이 훼손되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군산시는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사업의 추진 여부와 함께 대상 문인의 선정 방법도 재검토해야 한다. 시민들의 신뢰를 살펴보지도 않고 특정 단체에 위임하고 책임을 회피하여 갈등을 초래하면 사업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이념과 도덕성을 초월한 정신세계의 표현활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이의 삶이 함께 아름답고 풍요롭기 위해 최소한의 이념적 도덕적 자기통제를 요구한다.
지금 우리들을 아프게 하고 있는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성추행 행태는 물론 정치 경제 법조 문화 예술계의 온갖 비도덕적 비윤리적 비이성적 행태들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책임져야 하고 처벌받아야 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용서는 가해자가 입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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