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2018-12-17 09:19:44
여울 김준기(시인. 전 교장)
미국의 극작가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미국 남부지방의 몰락한 대지주의 딸 블랜치를 통하여 성(性)의 좌절과 분열을 사실적으로 그린 3막의 희곡이다. 1947년에 무대에 올라 초연되었으며 퓰리처상을 받은 명작으로 인간의 꿈과 현실, 이성과 욕망 사이를 줄타기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초상과 그들이 파멸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동양의 선가(禪家)에는 파자소암(婆子燒巖)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불심이 깊은 여인이 자기 집 뒤안에 암자를 짓고 도(道)를 공부하는 젊은 선객(禪客)을 들여 옷과 음식을 마련해 주며 수행을 도왔다. 지극정성으로 수발한지 20여년, 노파가 된 부인이 젊은 딸을 암자에 보내 수행하는 스님을 품게 하였다. 스님 품에 안긴 딸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니(枯木依寒巖) 한 겨울에도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三冬無暖氣).”라고 대답했다. 딸이 노파에게 이 말을 전하자 노부인은 “내가 사람을 잘 못보고 집안에 도적놈을 키웠구나”하고 화를 내며 선객을 내쫓고 암자를 불태워버렸다.
사람에게서 욕망이 메말라 버리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오직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본성에는 욕망이라는 생명력이 있다. 욕망은 쾌락을 좇는 욕심만 가진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즐거움과 희망과 행복을 이루려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욕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의 힘을 쏟아 부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자존감을 높이고 스스로의 능력을 확인하고 쾌감과 즐거움과 성취감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욕망은 육체적 물질적 본능과 정신적 지적 본능의 복합체이다.
풍요로운 물질을 생산하고 이용하여 쾌락과 만족감을 즐기고 한편으로는 서로의 관계를 맺고 넓혀가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적 삶을 통해 육체적 물질적 욕망과 차원이 다른 즐거움과 지혜에 바탕한 문화적 정신적 욕망을 이루어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두 욕망은 동시적인 것이지만 육체적 물질적인 1차적 욕망과 정신적 지적인 2차적 욕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차적 욕망이 강화되면 풍요로운 물질을 생산하고 부와 권력을 성취하기 위해 몰입하게 되지만 2차적 욕망이 강화 되면 사랑 공감 배려와 같은 인간적 유대의식과 지혜를 축적하여 도덕적 문화사회를 이룩하게 된다. 1차적 욕망이 2차적 욕망을 지나치게 지배하게 되면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제동장치가 풀어진 전차처럼 오직 물질적 욕망을 향해 질주하게 되고 거기에 탑승한 개인 가정 사회 국가는 마침내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2차적 욕망이 지배하게 되면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성취동기와 삶의 원초적 가치가 약화되어 박제된 수행자처럼 비현실적이고 무기력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다양한 문화매체가 발달하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걸러지지 않은 채 무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는 이 두 욕망이 충돌하여 빚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현상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불특정 묻지마 살인과 여성 성문제 폭로의 도화선이 된 ‘미투’와 ‘위드 투’에 이어 ‘빚투’라는 생경한 말도 등장했다.
국가 교육의 근간인 유아교육을 사기업화 사교육화의 복마전으로 전락시켜 놓고도 자신들의 욕망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마음이 급한 학부모들을 회유 협박하고 동조하는 정치세력을 끌어들여 국민적 분열을 꾀하고, 소위 지성인이라는 언론인 종교인 정치인들이 자기 패거리들의 정치적 욕망을 위하여 가짜뉴스를 만들어 인터넷 사회 관계망(SNS. 유투브 등)을 이용해 무작위로 살포하고, 국민을 지켜주는 민주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최고위급 법관들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정의의 가치를 내박치는 비참한 우리사회 모습이 지극히 걱정되고 참담하다.
이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개인의 욕망은 물론 사회적 욕망도 박제되어서는 안 되지만 지혜롭게 스스로 통제하여야 한다. 우리 국민은 역사를 통해 국가가 어려운 지경에 이를 때에는 사회정의의 기치를 높이 드는 참으로 지혜로운 욕망을 축적하고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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