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고 이인식(1901. 10. 22-1963. 03. 21) 선생은 400여 년 동안 조상대대(12대)로 이어온 가문의 만석부호 이태하의 3남2녀 막내로 임피면 읍내리 453번지에서 태어났다.
임피초 졸업 후 16세 때 조득 여사와 결혼했고,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에 재학 중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주최 측과 미국 영사관과의 연락책임을 맡는 한편, 전북학생 대표로 활약했다. 3월5일 종로구 송현동 62번지 자택에서 일경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군자금 모집의 비밀사명을 띤 이원형(볼기를 80대를 맞고 석방)을 알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후 군자금을 마련하기로 결심하고 고향 임피로 내려와 상속받은 땅을 팔거나 저당 잡혀 군자금 8,000원을 마련한 후 다시 상경해 이원형을 만났다. 이원형은 선생에게 “신의주로 가서 엿판에 「올림픽 마크」를 한 엿장수를 만나라”고 했다. 선생은 일경의 눈을 피하고자 친척 한 사람과 함께 서울에서 개성까지 기차를 타고, 개성에서 다시 걸어서 한 달 만에 신의주에 도착했는데 그때가 1920년 8월경 이었다.
도착 후 꼬박 사흘을 헤매다 엿판에 「올림픽 마크」를 한 엿장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안내로 밀선을 타고 만주 봉황성으로 가서 1919년 4월 발족한 상해임시가정부 요인들에게 8,000원을 헌납한 후 무기명 1천원 짜리 공채 5매와 기명으로 된 공채 1천원 짜리 3매를 수령하게 되었다. 공채 발행인은 상해 ‘대한민국임시가정부(臨時假政府) 재무국 총재 이승만, 재무총장 허영완’이었다.
해방이 됐으나 선생은 만주에 남아있던 동포 자녀들을 거두어 가르치고자 목단강고려중학교 교장으로 남아있다 건강이 악화돼 곧바로 귀국하지 못했다. 1946년 9월에서야 병석에서 일어나 장남 병주의 등에 업혀 38선을 넘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53년 폐교 직전의 임피중학교 2대 교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농촌의 소년 소녀들은 농사일을 도와야 해 중학교 진학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선생은 자전거로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배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부모를 설득했고 학생들을 위해 박봉을 털었다. 특히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근학대(勤學隊)’를 조직했고, 약초를 재배하고 산약초를 캐어 팔아 장학금을 지급했다.
선생의 독립군자금 모집 관련 사료는 완주문화원 간행 「완주향토사료지」 ‘독립운동가 김갑수의 인물사화’ 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김갑수는 1918년 중국 남양대학 졸업 후 1919년 4월 상해에서 의정원 의원으로서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그 때 김갑수는 우리 임시정부 발행국채를 가지고 국내에 잠입, 애국운동의 군자금을 마련하는데 앞장섰으며 특히 임피갑부 이인식은 김갑수가 가지고 온 국채 1만원어치를 사서 우리 임정에 큰 보탬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생이 임피중학교 정년퇴직 20일 전인 1962년 2월 8일 동아일보 남시욱 특파원과의 대담에서 “5.16 혁명정부에서 공채를 상환해 주려고 법제처에서 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니 돈이 나오면 그것도 학교에 기부하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혁명정부의 재건국민회의에 상당한 기대를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의 기대와는 달리 자유당, 민주당 정부가 군자금 공채 상환을 외면했듯 혁명정부 재건국민회의 역시 법안 상정을 미루며 상환을 이행치 않았다.
젊은 시절 구국의 일념으로 상속된 1만 석을 생산할 수 있었던 토지 전부를 독립군자금에 헌납했던 선생의 말년은 매우 빈한했다. 임피중 재직 시 학생들을 위해 박봉을 털어야 했으므로 1962년 2월 28일 퇴직 후에는 거처할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퇴직 다음 해 1월 12일 ‘서수 집’(서수리 774번지, 572㎡)으로 이사했지만 두 달도 안 돼 별세하시고 말았다. 구 토지대장을 살펴보면 원래 백형 이완식의 장남 이병관의 소유였다. 그러나 장손 이병관은 한 살 아래 숙부에게 거처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인다. 선생이 별세한 지 1년 후 그 집은 타인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현재는 폐가로 방치된 상태다.
선생의 임피중 제자였던 ‘옥구농민항일투사추모회’ 문병준 회장은 회고록에서 선생을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20대에 선생님이 살던 ‘서수 집’과 300m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선생님도 병환으로 누워계시고 우리 어머니도 암 선고를 받고 회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루는 선생님 병환이 궁금해 찾아가자 선생님께서 어머니 안부를 물어보시며 마늘을 구워서 드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그런데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다. 쌀이 있으며 좀 주면 좋겠다.’ 고 하셨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집에 와서 어머니를 간호하느라고 선생님 부탁을 깜빡 잊고 말았다. 1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선생님도 돌아가셨다. 선생님께 죄를 진 것이 항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1990년대 초 광복회 전북도지부에서 선생님 동상을 참배한다고 해 쌀 3포대를 기단 아래 놓고 지난 이야기를 고백하니 마음이 후련했다.”
선생은 조국 광복을 위해 환국했건만 저마다 권력쟁취에 혼란스럽던 조국의 모습을 개탄하면서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3.1독립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이갑성의 관직 제안도 거절했다. 다만 전라북도 지사의 권유로 폐교 직전의 시골 임피중학교 교장으로 1953년 취임해 1962년 2월 28일 정년 퇴직하셨다.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를 수여한 후 1963년 3월 21일 별세하자 전라북도 사회장(위원장 김인 전라북도 지사)으로 5일장을 거행했으며 고향 선영에 모셨다. 10여 년이 지난 1974년 10월 17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151호에 안장을 하였다.
선생이 가신지 반백 년이 넘었지만 2005년 10월 1일 월명공원 춘고원에 세워진 ‘애국지사 춘고 이인식 선생 동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필자는 선생의 장손 고 이일곤 선생이 한국감정원 대전 부원장 재직 시 그의 조부가 1920년 군자금으로 헌납했던 토지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언급하고자 한다.
1995년 6월 시점 현재로 조사되었던 헌납 토지 총면적은 81만3,364㎡(246,474평; 대지 4,646평, 답223,161평, 전18,667평) 이었다. 대략적으로 토지가격을 3.3㎡(평) 당 약 10만 원씩으로 환산하더라도 약 25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는 현재까지 유족들에게 공채 보상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노 독립운동가는 가난과 병마로 시달리며 한촌(寒村) ‘서수 집’에서 쓸쓸한 임종을 맞았다.
임피중 제자 송봉규 고문(춘고 이인식 선생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선생이 병마에 시달이며 돈이 없어 군산 ‘진내과’와 익산 ‘김외과’에서 외상으로 치료를 하셨다. 장례식 후 며느리가 치료비 외상값을 갚기 위해 두 원장을 찾아 갔으나 모두 극구사양을 했다.”고 하였다.
제안컨대 선생의 생가를 지나는 도로명을 ‘춘고 이인식 길’로 변경하여 선양하고, ‘서수 집’을 매입해 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담는 ‘작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 어떨까?
군산미래신문 (kmr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