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러한 관계 속에서의 나눔은 미묘하게도 암묵적인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교류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면서 익명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 있다. 일반적인 나눔이 아닌 특별한 나눔인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마음 한편 감동이 물밀듯 밀려와 그 분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그만큼 부끄럽기도 하다.

 지난 12월 27일 MBC 뉴스에 의하면, 이날 오전 11시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40대로 추정되는 남자의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이 전화는 23년간 8억 8천여만 원을 기부한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로, 그가 지정한 장소에 가 보니 종이상자에 5만 원짜리 지폐와 돼지저금통, 총 7600여만 원과 ‘대학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들, 소년소녀 가장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자신을 드러내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다만 그 욕구가 많고 적음의 차이, 혹은 성격적으로 환경적으로 자제 내지는 절제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익명으로 선행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그 분의 인생을 추측해 본다. 어려울 때 누군가의 도움을 크게 받았을까. 아니면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 누군가가 냉정히 도움을 뿌리친 건 아닐까.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것은 아닐까.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종교의 가르침을 배운 대로 실천하는 분은 아닐까. 종교의 타락을 논하는 시대에 보기 드문 참 종교인은 아닐까. 현현한 예수나 붓다는 아닐까.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그림자라도 흉내내어 볼까’. 그리하여 붓다의 말씀 ‘무재칠시’無財七施를 모셔와 마음 깊이 심어두기로 했다.

 첫째, 화안시和顔施이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고 부드럽고 정답게 남을 대하는 것이다.

 둘째, 언시言施이다. 상대를 대할 때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대하는 것이다.

 셋째, 심시心施이다.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넷째, 안시眼施이다. 호의를 담아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다섯째, 신시身施이다. 약한 사람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손을 거들고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이다. 지치고 힘든 이에게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일곱째, 방사시房舍施이다. 상대의 속을 헤아려서 편안하게 쉴 공간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 올 한 해 무재칠시 그늘에서 놀다 보면 그 그늘 끝자락을 개미에게라도 나눠 줄 수 있지 않겠나,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스미고 스미어라. 그래서 행복해져야겠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결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나의 지론을 나는 크게 믿는다.

 행복하시라, 새해 모두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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