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 예술회관에서 열린 국악관현악단 공연의 선율이 안개처럼 내려 앉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장중한 공연이 신춘 저녁의 서정을 황홀하게 수놓으면서 향연의 막이 올랐다. 

‘산곡(山曲)’이 문을 열었다. 우리 산하의 정겨움이 묻어나고 굴절이 많은 민초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그 뒤를 강원도아리랑이 애절한 가락을 토해낸다. 가슴 뭉클한 선율의 한이 구구절절 맺힌다.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의 ‘범피중류’는 끊어질 듯 이어가는 가인의 사실이 간절하고 마디마디에 얹혀진 곡조가 구성지게 다가온다. 

연주는 서정적인 음률로 도입부를 장식하여 음미와 경청의 깊이를 더하고 어느 순간 창과 사설이 어우러진 흥겹고 유쾌한 장으로 반전한다. 이어서 사물놀이와 성주 굿의 어울림은 음계의 고저를 시원스럽게 넘나들고 주저없는 속풀이로 세상을 질타한다. 

장쾌한 반주, 걸쭉한 넉살이 고단한 삶의 시름과 심신의 나른함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실내는 숨죽인 경청의 진지함이 이어졌고 열정적인 부분에서는 추임새와 박수로 객석의 뜨거운 화답이 연출되어 즐거운 감흥의 시간을 만들었다. 

악(樂)과 가(歌)와 무(舞)가 어우러진 이 날 공연은 청중과 무대가 호흡을 같이 나눈 멋진 하모니의 장이었다. 

특히 전통 국악을 통한 이 날 공연의 주제인 낙화민성(樂化民聲) 이란 말은 ‘예기’의 ‘편명’의 하나인 악기에서 나온다. 

그 설명은 이러하다. 

“예(禮)는 사람의 마음을 절도있게 하고 악(樂)은 사람의 소리를 화평하게 한다. 정치로서 이를 행하고 형벌로서 이를 막는다.

예약형정(禮樂刑政)의 네 가지가 천하에 널리 행하여지고 백성이 이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왕가의 치도가 갖추어진 것이다.”

국가 경영과 치국의 요체는 인심의 조화와 균형에 근간한다. 각기 다른 인심의 소리를 경청하고 수렴하여 멋진 정치를 만드는데 이날 공연의 오케스트라 연주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소리의 조율, 궁극적인 하모니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정치운용의 본질과 매우 닮았다. 

정치가 순탄하고 원만하게 운영되려면 백성을 아우르는 통치자의 지도력과 국가경영 철학이 탁월해야 하듯이 연주가 파열음 없이 매끄러웠다. 

단원들의 영혼을 휘어잡는 연주와 지휘자의 역량이 관건이었다. 

넓고 깊은 식견과 포용력, 유연하면서도 열성적인 몸짓,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지휘봉의 메시지는 다종, 다양한 악기의 일체감과 효능을 유도하여 감동적인 예술혼을 만들어냈다. 

정예의 예능인들은 도제(徒弟) 분위기 속에서 오랜 세월을 묵묵히 갈고 닦아온터라 감동적인 공연, 전통음악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고장에 시립예술단(교향악단, 합창단)이 있어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전통음악의 따뜻하고 부드럽고, 묵직하고, 기쁘고, 슬프고, 추억이 있고, 회환이 있어 예술의 향기를 접할 수 있는 시립국악원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국악공연의 진수를 보고 느낀 바 있어 하는 말이다. 

언제나 ‘시립국악원’의 활동과 공연을 보게 될 것인지 기대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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