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로 바람꽃이 있는데 하얀 꽃이 바람에 흔들리면 그 모습이 아름답다.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에다 초록색 깔때기처럼 생긴 기관이 꽃술 주변을 빙 둘러싸인 게 영락없는 변산 바람꽃이다. 

변산반도에서 발견(1993년)되어 우리에게 알려졌다. 

세상에 아름답고 향기를 전해주는 꽃의 전설이 많이 있는데 하나의 꽃 이야기로만 듣고 버릴 수는 없다. 

꽃의 전설 그 자체가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과 얽힌 이야기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저 옛날 봄의 여신 ‘글로리스’에게 ‘아네모네’라는 아름다운 시녀가 있었다. 무엄하게도 이 시녀가 ‘글로리스’의 남편인 ‘제피로스’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글로리스’는 질투에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게 ‘아네모네’ 곧 ‘바람꽃’이다. 슬픔에 젖은 ‘제피로스’는 그녀를 잊지 못해 매년 봄이 오면 따뜻한 바람을 보내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는 전설이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의 바람에서 유래했는데 영어로는 윈드 플로워, 우리말로는 바람꽃이라 부른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바람에 꽃잎이 나부끼는 작지만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수줍은 듯 꽃봉오리에 연한 분홍빛이 도는 것 같은 바람꽃은 사람들이 ‘변산 아씨’라고도 부른다. 

‘아네모네’의 우리식 별칭 아니겠는가!

꽃에 대한 전설은 수없이 많다. 

그 꽃 속의 복수꽃, 이 꽃은 추위를 견디며 제 몸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여 버린다. 

겨울 끄트머리에서 추웠던 겨울에 대한 복수라도 할 듯 피기 때문에 ‘복수초’라 한 게 아닌가?

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등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개나리, 벚꽃이 동시에 피고 진달래, 매화가 함께 봄을 알린다. 

이상기후 변화로 모든 봄꽃이 순서 없이 동시에 피고 있다. 개화 시기는 옛말이 되었고, 질서는 더 이상 지켜질 수 없게 되었다. 

일찍 찾아오는 따뜻한 날씨로 순서가 파괴되고 상식을 무너뜨리면서 제각기 자태를 뽐내며 만발하게 핀다. 

봄의 꽃처럼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꽃을 피우고 자신의 향기를 발한다면 세상은 다양성과 나다움이 인정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봄에 빨강색의 꽃, 수줍은 10대 소녀들을 연상하게 하는 연분홍색의 꽃, 진노랑이며 연노랑의 꽃, 말로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되는 아름답고 예쁜 꽃 빛깔들의 봄꽃이 사방에서 피어나는데 우리네 살림살이는 언제나 피어날지!

‘낡은 말뚝도 봄이 돌아오면 푸른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핀란드 속담)고 했다. 

‘구십춘광(九十春光)’ ‘석 달 동안의 봄철’ 기운을 느껴보자. 피어나라. 기뻐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다시 찾은 봄이다.

※ 본 내용은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