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우연히 본 문해교사 신문기사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서울까지 가서 연수를 받았고 이후 시에서 문해교사 양성과정이 있다고 해서 수료도 했다. 마침 문해교사를 모집한다기에 면접을 봤는데 연거푸 두 번이나 떨어졌다. 중등교사 자격증도 있고 학원·방과후수업 경험도 많았던 터라 예상 못한 결과였다. 그러다 세 번째 면접 알림 문자가 왔고 “이번에 안 되면 하지 말자”고 갔는데 합격이었다.
그렇게 늘푸른학교 문해교사로 봉사한 지 1년 6개월, 당시 청학야학의 운영진들이 사정상 야학 운영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갑자기 교장직을 추천 받았다. 인수인계도 못할 정도로 사정이 급박했다. 이것저것 잴 겨를도 없이 교장직을 맡고 보니 대부분의 야학이 그렇듯 열악한 교실 환경에 교사들의 봉사로 진행되는 수업 등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검정고시 지원금이 나와 좀 숨통이 틔인 정도다. 또한 현재는 오전에는 문해교육장으로 군산시민교육센터를 오후에는 검정고시 대비를 주로 하는 청학야학으로 함께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8년 동안 하루 10시간 씩 근무하며 이 교장을 지원해주는 정현희 실무교사가 없었다면 운영이 어려웠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교장으로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또 있다. 학생들이 앎의 즐거움을 느끼고 체계적으로 단계를 밟아 나가며 그 학습의 결과물로 검정고시 합격이 있어야 하는데 시험 합격이 목적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왜 공부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다른 사람 앞에서 기죽지 않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모여 학창시절 이야기를 할 때 위축들지 않고 싶어서라고 말이다. 그렇게 늦게나마 용기내신 분들이고, 낮에 일하고 피곤하고 졸린 몸 이끌고 오신 분들인데 시험 통과도 중요하고 체계적인 학습도 필요한 것 같고 딜레마이다.
청학야학은 5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수많은 사연을 가진 학생과 교사들이 오고 간 곳이다. 그 중에서 이상기 교장이 부임한 후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시험 합격 후 췌장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의 자녀가 찾아왔던 일이다. 어머니가 합격하자마자 투병을 시작해 초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아두지 못했고 이후 잃어버려서 혹시 재발급이 가능한 지 묻기 위해서다. 어머니가 평생 소원을 이루셨던 그 합격증을 보관하며 어머니를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교육청에서는 사망자에게는 재발급이 안 된다는 답변을 해 왔다.
그 이후로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이분들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벌써 그렇게 4분이 돌아가셨다.
문해교육이나 야학이나 학생층이 얇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분이 많다. 용기를 내려면 가족 지지가 필수다. “할 수 있다”는 응원과 함께 노트나 연필도 선물하는 등 남편이나 자녀들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또 하나 사회가 급변하다보니 디지털 문해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형식적인 교육이 아닌 학습자들이 바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회가 된다면 디지털 문해 교육기관을 운영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 덩어리이지만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것 후회는 없다. 어르신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보다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에는 이제 초연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