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모여 놀다가 햇살이 막 뜨거워질 무렵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가방을 삐딱하니 메고, 아니면 그조차도 없이 터덕터덕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당최 일어날 기미가 없는 아이들을 보며 사무실이었던 공간을 급하게 교실로 꾸며 미처 창문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바로 앞에서 마주친 선생님의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치기는 일쑤요, 칠판 앞 선생님의 목소리에 오히려 “시끄럽다”며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 아이가 내지른 소리 끝에는 옅은 술냄새가 전해져 자그마한 교실을 채웠다.
올해 4월 군산에 중학교 한 곳이 개교했다.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전북교육청 지정 위탁대안교육기관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바로 ‘군산 내일을 여는 학교(명산동 동서의원 앞)’가 그곳이다.
지역 내 20개 중학교에서 징계를 받았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의무교육인 중학교를 그만둘 수 없어 일정 기간 위탁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들렀다가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간다.
처음 기독교 정신을 실천해보자는 큰 뜻을 품고 위탁학교를 신청해 지금 교장을 맡고 있는 조규춘 목사(전 군산YMCA 사무총장).
교육계에 오래 몸 담았던 지인이 “단지 목회자의 사랑실천으로 다가가겠다는 생각은 사치이며 어쩌면 매일 같이 악마를 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 모두 손사래 치며 반대해도 “할 수 있다고 해보겠다”고 말했던 그다.
개교 후 반 년이 지났다.
호기롭던 그는 “이성이나 지적능력, 판단력은 어디로 보내버렸는지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 아이들은 뭔가”라는 어쩌면 답이 없는 의문에 빠져 있다.
본질을 해결하면 문제가 해소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이런 저런 방안을 적용해봐도 매번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아이들, 본질은 고사하고 도저히 정체 파악도 힘들 지경이다. 반세기 넘게 켜켜이 쌓아왔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져 형체를 찾기 힘든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비우는 일이 오히려 더 쉬웠는지 모르겠다. 뭔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실마리가 있으면 미련이 컸을 테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조금의 자존심도, 자만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가졌던, 내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 ’군산 내일을 여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아이들이 좀 더 컸을 때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돌이켜봤을 때 조금 남다른 것이었고 마음 속에 작은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혼자라면 한 달도 못 버텨낼 이 길에 두 명의 교직원, 기꺼이 과목을 맡아준 강사들, 9명의 운영위원이 함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게다가 교육청에서는 강사비와 교육·교재비만 지원해주기 때문에 인건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해서 지역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도 매달 100만 원씩 기꺼이 지원해주는 지역기업 ‘대왕제지’의 후원이 큰 힘이 된다.
‘이런 손길이 모이고 진심이 더해지면 아이들도 마음을 열어줄까? 분명히 아이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며 아이들이 알던 어른과 다르게 대했는데도 몰라줄 때의 속상함은 언제까지 갈까? 아니, 그것조차도 어른 관점이다. 답답한 교실에 창문이나 얼른 내야 할 터이다. 공사 날짜를 잡고 나니 뭔가 모르게 가슴이 시원하다.’
